[STORY]자연에서 느낀 감정을 그리는 작가 '정민희'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정민희입니다. 도시 안의 자연, 특히 공원이라는 공간에 주목하여,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내면의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익숙한 도시의 공간 속에서 발견되는 아주 사적인 감정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회복과 연결을 작업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작가로 삶을 시작하시기 전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회화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작가가 아닌 다른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학부 시절부터 줄곧,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이걸 어떻게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30대 초반,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2년 6개월 동안 회사에 다니게 되었어요. 그 시기에도 작업을 완전히 그만둔다기보다는, 잠시 유보한 채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해보고 다시 돌아올 계획이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건, 저는 결국 무언가를 작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작업으로만 채워진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경험 역시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Urban forest #8_acrylic on canvas_162.2x130.3cm_2025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잠시 작업을 내려놓고 회사에 다니던 시절, 마음 깊은 곳에서 작업에 대한 갈증이 정말 컸어요. 그 시기에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공원’이었어요. 회사 근처 작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는 코로나 시국이기도 해서 거의 매일 한강공원에 머물며 스스로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공원’이 제 작업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도시 속 공원을 걷는 일은 제게 감정적인 피난처가 되었고,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은 언제나 새롭고 깊게 다가왔어요. 그 감각들은 결국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고, 특히 ‘안전한 장소’를 찾고자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지금의 회화적 탐구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해(2025년) 여러나라에서 활동을 펼쳐가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2025년은 저에게 정말 특별한 해였어요. 3월에는 홍콩 아트센트럴에, 4월에는 시카고 엑스포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해외에서 제 작업을 선보일 수 있었는데요, 현지에서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감정을 매개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체감하면서,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 작가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어떤 것을 하고 계셨을 것 같으세요? 그리고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이나 살아보고 싶은 삶이 있나요?

저는 아마 어떤 상황이었든 결국 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이야 다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시간 동안은 정말 쉽지 않았고, 저 자신을 지탱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어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결국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흔들림 없이 작업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죽기 직전까지도 작업실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고, 그게 제가 바라는 삶이에요. 지금은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재료나 매체를 활용해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작업의 형식이 달라져도, 그 안에서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Turbulent Calm_acrylic on canvas_130.3x97cm_2025



설치 작업을 하셨다고 이야기 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혹시 설치 작업에 대한 계획은 있으실까요?

대학원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그 시기에는 오히려 설치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지금과 비슷한 맥락이긴 하지만, 그때는 특히 '머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제 삶의 공간 자체가 자주 바뀌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변적인 설치 작업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 후 작업을 잠시 멈췄던 5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평면 회화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설치 작업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가능하다면 올해 말에 예정된 개인전에서 새로운 형태의 설치 작업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다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이브인과 작업하시면서 평소와 다르게 느꼈거나 도전해보신 게 있으셨을까요?


아도니스 호텔에서 진행된 다이브인 아트스테이 작업은 제가 예전에 진행했던 작업들과 맥락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특히 '호텔'이라는 공간이 갖는 특성이 흥미로웠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순간적으로 아주 사적인 공간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공간에 직접 페인팅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또 평소에는 캔버스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작업해왔기에, 그보다 더 큰 물리적 범주에 작업을 펼칠 수 있다는 점도 저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자극이 되었어요. 공간과 회화가 만나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보게 된 계기였고, 앞으로 작업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