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감정을 선에 담아 전하는 '콘'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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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감정을 선에 담아 전하는 사람’ 입니다. 스스로 제가 작가라고 불릴만큼의 단단함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물론 그만큼 단단해지기위해 계속해서 연마의 과정 중에 있고요. 또 작가라고 하면 단어의 전통적인 의미 안에 갇혀서 제 한계를 그어두는 것 같아 소개할 때 작가라는 단어 대신 앞서 말씀드린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Q. 어떤 공부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나요? 

저는 대학시절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어요. 수업 때 듣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는데요. ‘Ne pas choisir, C’est encore choisir’라는 문장인데,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저마다의 신념을 갖고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는거죠. 설령 두려워서 선택을 하지 않고 그것을 피했다 하더라도 그 또한 나의 선택이라는 아주 철학적인 메세지가 담긴 말이에요. 


이미지출처: https://citation-inspiration.com/citation/3465


대학생은 고민이 많을 시기잖아요. 그 시기의 저는 겁까지 많았어서 선택과 리드를 도맡아 하는 자리보다는 항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택해왔어요. 어디에서나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 있는 구성원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제 마음 한 켠은 항상 불편했어요. 저는 책임감 있는게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책임을 피한거였으니까요. 그걸 저 스스로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이지 머릴 한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이제껏 살아온 방식도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이구나. 선택을 피한 것 마저 내가 한 선택이 되는거라면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이미지출처: pexel


프랑스인들의 사상과 문화를 좋아해요. 테라스 문화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실내에 갇혀있지 않고 외부의 소리와 공기, 분위기를 함께 느끼면서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이젠 어딜가서 테라스 자리가 있으면 실내에 들어가지 않고 꼭 거기에 앉아요.


Q. 대학 졸업 후에는 어떤 사회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예전의 저는 항상 뭔가를 시작하려면 어딘가 소속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다보니 항상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 아등바등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동아리, 대외활동, 봉사같은 것들이요. 대학 졸업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이제 돈을 벌어야하니까 막연히 또 회사를 들어가야겠다 생각했죠. 도대체 제가 뭘하면서 살고 싶은지 모르겠는거예요. 


그나마 제가 갖고 있던 것 중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던게 영어였어요. 제가 학교를 나온 지역인 대구에도 용산처럼 미군부대가 있는데요. 원하는 부서에 지원해서 체험할 수 있는 인턴제가 있어서 대학 막학기때 지원했었어요. 그리고 이후엔 외국계 회사를 찾아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첫 직장은 서울이었는데요. 25년을 내리 고향인 대구에서 살다 혈혈단신 홀로 서울에 오려니 무서운거에요. 부모님 그늘도 없고, 친척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말 그대로 타지였어요. 그렇지만 일단 한 번 올라가보고 혹시나 망하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부모님께 보증금을 지원받아 서울에 왔어요. 그러다 회사생활을 시작한지 1년만에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초기 작업 스타일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너무 심심한데 뭘 하면 좋을까하다가 아, 나 그림그리는거 좋아했지. 시간도 많은데 다시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림을 그릴려면 도구를 먼저 갖춰야하잖아요. 그래서 찾아보다가 다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더라구요. 그길로 그 달 월급을 털어 아이패드를 장만해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 재밌는거에요. 그때가 2020년도 여름이었어요. 그때는 그냥 진짜 순수하게 재밌었어요. 그러다 얼마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점점 욕심이 생기는거예요. 내 그림 나름 괜찮은데 왜 사람들이 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순수재미를 넘어 욕심이 조금 생기니 사람들의 반응에 목말라했어요. 그렇게 1년을 하다가 운 좋게 많은 반응을 이끌어낸 스타일이 있었고 그 스타일을 조금씩 다듬어가며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게 되었어요. 사물, 식물, 동물, 풍경까지 다양한 소재를 그렸는데 사람을 그렸을 때가 반응이 제일 좋아요. 


그 질문도 가끔 받아요. 왜 아이패드로만 그리냐고요.


저는 그림이 조금이라도 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밖에 내놓기가 싫어요. 제가 볼 때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려내려면 수정을 아주 많이 해야하는데 그러기에 아이패드가 제일 편하고 좋더라구요. 마음에 들때까지 작업을 무한정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원화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어요.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 스타일들이 많아요.

 

재택근무를 하던 2년 남짓의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 같아요. 내 인생이 재미없으니까 사람만나기도 싫더라구요. 다들 밝아보이는데 인생의 불이 나에게만 꺼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클래스 101의 한 마케터님의 제안으로 온라인클래스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 재미없던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절 꺼내준 셈이죠. 그때 그 마케터님께 정말 감사해요. 그 시기의 저는 시간이 정말 많았어서 하고 싶었던거 다 해보겠다는 마음이 컸었고 그래서 온라인 클래스도 도전해볼 수 있었어요. 



그 때 하고 싶은거 다 해야지 하던 그 결심만큼 모든걸 다 해보진 못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모아둔 돈을 잃는게 두려웠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기회비용 따지지 말고 진짜 다 해볼걸. 실패하고 돈 좀 잃었어도 내가 당장 차가운 길거리로 나앉는 그런 머릿속 최악의 일 같은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Q. 퇴사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섰겠군요. 

네 그 이후로 들어오는 외주는 가리지 않고 거의 다 했어요.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그림으로 돈은 벌고 있는데 그 수단이 외주이다보니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내 그림을 맞춰야하니까 그게 또 힘들더라구요. 회사를 퇴사를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돈의 노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수동적으로 외주를 받아서 돈을 벌기 보다는 눈앞에 당장의 돈은 보이지 않더라도 가슴이 뛰고 재밌는 일을 더 많이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가슴뛰는 일을 좇다가 다이브인을 만나게 되었죠.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다이브인을 발견했을때는 어? 이런게 있네, 하고 들어가서 자세히 보는데 이내 와, 이런게 있었네.로 바뀌었어요. “다이브인 성수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었고 이 경험을 통해 많이 용기를 얻었어요. 아, 나 계속 할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제 그림과 이야기가 담긴 책도 출간해보고 싶고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과 더 많은 접점이 생길 수 있도록 전시, 페어 등 오프라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려고요. 밖으로 더 활발히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Q.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을까요?

제 그림을 보시고 “따뜻한데 또 어떻게 보면 차갑기도 해요.” 라는 식으로 저마다의 경험과 눈을 통해서 보고 느낀걸 이야기해주시는게 너무 신기해요. 


처음엔 그냥 으레 해주는 말이 아닌가 싶었어요. 왜냐면 제가 말씀해주시는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도 점점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면서 느끼는게 있다보니 이제는 그런 말들이 저도 이해되고 신기하고 좋아요. 그래서 그림을 더 하고 싶어요. 이런 소통이 없었으면 제가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림은 혼자서 그리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건 결국 소통이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그림은 참 고마운 매개체죠.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 몰랐던 것들을 또 새로이 발견해주시니까 그런 것들이 다시 제 작업에 신선하고 긍정적인 도움이 되어요. 이게 그림이 주는 진짜 재미인 것 같아요. 가치를 알아봐주는 분들에게 보답을 하고 그 기대에 계속해서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